1990년대 체제 위기 속의 북한고고학 변화와 생존 전략

1990년대는 북한 현대사에서 가장 극심한 위기의 시기였다. 사회주의권 붕괴, 김일성 사망,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경제 붕괴는 국가 전반의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학문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고고학은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 선전 도구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려 애썼고, 일부에서는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 글에서는 1990년대 북한 고고학의 주요 흐름, 체제 위기 속에서의 학술적 생존 전략, 유적 관리 체계의 변화, 그리고 디지털 기반 고고학 도입 시도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김일성 사망과 사상 체계 재정비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은 체제의 정통성과 권력 계승을 내외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때 고고학은 여전히 유효한 이념적 정당성의 원천으로 작동하였다. 북한은 단군과 고조선을 거쳐 김일성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위대한 역사 계보’를 더욱 강조하였고, 고고학은 이를 시각적·물질적으로 입증해주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유훈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할 수단이 필요했고, 고고학은 그 필요에 부응하는 상징적 콘텐츠가 되었다. 단군릉, 고구려 유적, 발해 유산 등의 복원 및 보존은 단순한 역사 유산 관리가 아니라 체제 계승의 상징으로 기능하였다.

2. 경제난과 고고학 연구 인프라의 붕괴

하지만 이러한 이념적 필요성과는 별개로, 1990년대 북한 고고학은 실질적으로 심각한 운영 위기를 겪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식량, 연료, 기본적인 교통망조차 마비되었고, 학술기관 운영도 큰 타격을 입었다.

조선과학원 역사연구소, 조선중앙력사박물관, 평양 대학 내 역사학부 등은 인력 감축, 자료 유실, 출판 중단 등 여러 위기를 겪었다. 발굴 활동은 거의 중단되었고, 기존 유적지 관리도 최소한의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많은 유물은 보관 시설이 낙후되며 훼손되거나 유실되었고, 고분이나 토성 등은 방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북한은 외부에 체제 취약성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고학 연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선전용 간행물과 방송을 지속하였다. 실질은 정지 상태였지만, ‘정치적 모양새 유지’가 더 중요한 시기였다.

3. 유산 보존에서 복원 중심으로의 전환

1990년대 북한 고고학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 유적의 복원 중심 정책 강화였다. 발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발견된 고조선 및 고구려 유적지를 복원·정비하여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기에 집중하였다. 대표적으로 단군릉과 안악 고분군, 대성산성, 고구려 벽화묘의 보존 사업이 지속되었다.

복원 사업은 과학적 고증보다는 정치적 상징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적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제한적으로만 공개되었고, 많은 복원이 실제 유적 상태를 반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문화의 부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예컨대 단군릉은 대리석과 화강암을 이용해 새롭게 조성되었고, 내부 유적은 사실상 박물관화되었다. 안악 고분의 경우 벽화 손상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복원되었다’는 보도가 반복되었다.

4. 내부 학문 구조의 이념 재강화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은 고고학의 이념 일관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와 사회주의 진영의 재정비라는 이론적 논리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고학은 역사적 정통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더욱 강조되었다.

특히 단군 실존, 고조선 강역 확장, 락랑군 부정, 고구려 우월성 강조 등의 테마는 반복적으로 학술지와 교과서를 통해 주입되었다. 유물의 해석은 여전히 계급 구조 및 민족주의 사관에 근거하였고, 해외 고고학 이론은 대부분 ‘제국주의적’이라며 배척되었다.

이 시기 북한에서 발간된 <력사과학>, <조선고고학> 등의 간행물은 과거보다 얇아지고 발간 주기가 불규칙해졌지만, 내용은 더욱 폐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념 논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5. 디지털 기반 자료 보존 시도

흥미롭게도 1990년대 말부터 북한은 제한적이나마 디지털 자료 보존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물 훼손 및 유실 사례가 증가하면서 일부 학자들이 고분 벽화나 고구려 유적의 사진 자료와 기록을 전산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데서 출발하였다.

당시 평양 컴퓨터기술연구소의 협력 아래, 고분 벽화의 일부 사진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 보고도 존재한다. 다만, 컴퓨터 보급률이 낮고 전기 사정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디지털 고고학의 기반이 되기에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이후 김정일 체제 하에서 정보기술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조금씩 확대되며, 후속 세대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남겼다.

6. 체제 선전 기능의 지속

전체적으로 보면, 1990년대 북한 고고학은 실질적 정체와 정치적 유지가 병행된 시기였다. 국가 차원의 발굴이나 유물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고고학이 체제 선전에서 갖는 상징적 기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각종 대내외 행사, 기념일, 정치 선전 매체에서는 단군과 고조선, 고구려, 고려를 조명하는 기사나 자료가 꾸준히 등장했다. 고고학은 민족사 재구성의 기반이자, 김정일 체제의 정통성을 암묵적으로 뒷받침하는 요소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북한 고고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이념적 생존을 도모하며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한 시기였다. 연구 인프라와 인력은 약화되었지만, 체제 선전을 위한 복원 사업, 민족사 강조, 내부 담론 유지, 디지털화 시도의 발아 등은 고고학이 단순한 학문을 넘어 체제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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