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2011년 말 집권 직후부터 비교적 젊고 개방적인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다양한 정책 개혁과 대외 전략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고고학 역시 단순한 민족주의적 상징에서 벗어나 문화 외교 및 체제 이미지 개선의 수단으로 새롭게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구려 유적, 단군릉, 발해 고분군 등 주요 유적들이 재정비되거나 새롭게 조명되었으며, 디지털 기술 도입과 외국인 대상 콘텐츠 확장도 병행되었다. 본 글에서는 김정은 시대 초기 고고학의 전략적 활용 양상과 이로 인한 구조적 변화에 대해 고찰한다.
1. 유적지의 재정비와 국가 주도 이미지 개선
김정은 체제는 기존의 고구려 유적, 단군릉, 평양성, 발해 유적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보수 및 재정비 작업을 실시하였다. 특히 평양 외곽의 단군릉은 조명, 영상 설비, 주변 환경을 현대적으로 개선하여 ‘민족 시조의 묘소’로서의 상징성을 강화하였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내부 습도 조절 시스템을 보완하고, 일부 벽화는 복제본을 활용한 박물관 전시로 대체하여 보존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내부 주민의 자부심 고취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및 학술 교류 대상자에게 북한 문화유산의 ‘자주적이고 찬란한 역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 주도의 통합 관리체계는 기존의 중앙집중적 고고학 체계를 더욱 체계화하면서, 외형적으로는 현대화된 이미지 구축을 시도하였다.
2. 고고학의 외교 전략화
김정은 시대 북한은 고고학과 문화유산을 ‘비정치적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예컨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시도, 해외 박람회에의 참가, 외국 언론을 초청한 유적지 탐방 등이 제한적이나마 시도되었다. 특히 고구려 벽화고분은 북한 내에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을 강조하며 국제적 관심을 유도하였다.
또한 중국, 러시아 등의 일부 역사학자와 비공식적인 학술 대화를 추진하기도 했으며, ‘한민족 고대사’라는 이름으로 남한 학계와의 접촉을 우회적으로 모색하였다. 다만 이러한 외교적 시도는 체제 선전 목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실질적 신뢰 구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3. 디지털 고고학과 전시 콘텐츠의 발전
2010년대 들어 북한은 고고학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시도하였다. 평양정보기술국과 역사연구소는 고분 벽화의 3D 복원, 유적지 가상 투어 콘텐츠 개발, 전자 도록 제작 등에 착수하였다. 일부 박물관에는 터치스크린 기반의 해설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영상 해설 및 전자지도 등 현대적 요소가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는 청소년 교육, 외국인 홍보, 내부 선전 영상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고고학이 기술과 결합해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고조선 5000년 역사’라는 내러티브를 시각화하는 데 있어 디지털 콘텐츠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되었다.
4. 교육 콘텐츠로서의 고고학의 재구성
김정은 체제는 교육 분야에서도 고고학을 민족 정체성과 체제 정당성 교육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내용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기존 서술보다 더 체계적이고 시각적인 자료가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단군 건국 신화는 현대 과학 기술로 ‘입증되었다’는 형식으로 설명되었고, 고구려의 발전은 자주국가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발해는 ‘고구려 계승 국가’라는 해석이 반복되며 북한의 민족사적 계보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러한 교육 콘텐츠는 이념 강화뿐 아니라 체제에 대한 주체적 긍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5. 학술 활동의 통제와 선전성 강화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의 고고학은 기본적으로 국가 통제 하에 진행되었으며, 연구 결과는 체제 정당화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었다. 역사연구소와 김일성종합대학 고고학과는 여전히 주체사관에 근거한 해석을 중심으로 학술지와 단행본을 발간하였으며, 외부 학계와의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개된 학술 자료 대부분은 단군릉 발굴 보고서, 고구려 고분 해설서, 발해 유적 해석서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고대 유물에 대한 기술적 설명보다는 민족주의적 의미 부여가 중심을 이뤘다. 고고학적 사실 자체보다 정치적 의미와 민족 정통성에 대한 강조가 우선시되었다.
김정은 시대 초기의 북한 고고학은 과거보다 실용적이며 전략적인 방향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유적 보존과 정비, 디지털 기술 접목, 교육 콘텐츠 강화, 문화 외교 활용 등이 병행되며, 고고학은 더 이상 과거만을 기념하는 학문이 아닌, 현재의 체제를 강화하고 미래의 외교 전략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 중심의 해석 틀과 학문적 폐쇄성은 여전히 북한 고고학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으며, 외부 세계와의 진정한 학술 교류나 검증은 미진한 상태다. 앞으로의 방향성은 정치적 상황과 외교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고고학이 체제의 전략 자산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