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고학의 태동: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북한 고고학의 역사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본격화되었지만, 그 사상적 뿌리와 초기 인적 구성은 일제강점기의 조선 고고학에서 비롯되었다. 본 글에서는 북한 고고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조건과 해방 직후의 재편 상황, 그리고 초창기 학술 기관 및 연구 성향의 형성을 중심으로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1. 일제강점기 조선 고고학의 영향

조선총독부는 1910년대 후반부터 식민지 경영의 일환으로 조선사 편찬사업과 고적 조사사업을 병행하였다. 고고학은 식민사관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삼국사기’ 중심의 정통사관과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설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1915년 설치되어 유물 수집과 발굴조사를 주도했으며, 일본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시기 주요 유적 발굴로는 경주 금관총(1921), 평양 낙랑토성(1916) 등이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조선인 연구자들은 피지배 민족의 위치에 있었으나 일부 조선인 학자들도 일본 학자들과 공동으로 참여하며 기초 학문 훈련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손진태, 정인보, 이병도 등이 있으나 이들은 대체로 남한 학계에 남게 되었고, 북쪽에는 당시 활동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2. 해방 이후 북한 내 고고학의 급진전

1945년 8월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일본식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사 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인민위원회 체제 하에서 고고학은 단순히 유물 발굴의 범주를 넘어서서,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부터 북한 고고학은 ‘조선민족의 자주적 역사’를 실증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특히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 기원론이 강조되며, 이는 훗날 주체사관의 토대가 된다.

1946년 설립된 조선과학원 역사연구소는 북한 고고학 체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으며, 해방 이후 소련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역사 해석 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원시공산사회 → 고조선 → 삼국’으로 이어지는 발전단계론적 시각이 도입된다.

3. 초창기 인적 구성과 연구 경향

해방 직후 북한 학계는 전문 고고학 인력의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문학·사학·지리학 전공자들이 고고학에 참여하게 되었고, 소련의 유학을 통해 초기 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귀국해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대표적으로 김석형, 황영식 등이 있다.

이들은 초기에는 소련식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노동생산력 중심의 사회발전 단계론을 적용했으며, 유물 유형 분류보다는 사회구성체와 연계한 해석을 우선시했다. 이러한 경향은 남한 학계의 문화유형론 중심 고고학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만들어냈다.

4. 초기 고고학 기관의 설립과 구조

1950년 이전까지 북한에서 고고학 연구는 대체로 조선과학원, 조선중앙력사박물관, 평양대학 역사학부 등에서 수행되었으며, 체계적인 발굴보다는 역사학적 재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때 고고학은 역사학의 하위 분과로 취급되었고, ‘증거 수집’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국가 차원의 고고학 지원이 확대되면서 점차 실증 고고학 기반이 마련된다. 특히 평양 대성산 일대에서 진행된 초기 발굴은 ‘고조선의 유산’이라는 국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5. 단군 신화의 역사화와 민족 기원론

해방 이후 북한은 ‘단군’을 단순한 신화적 존재로 보지 않고, 실존 인물로 규정하였다. 이는 1946년 단군릉 복원 계획과 같은 상징적 조치로 이어졌으며, 이후 주체사관의 기초가 된다. 북한은 고조선이 기원전 3,000년경에 건국되었으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를 세운 인물이라는 주장을 제도화하였다.

이러한 역사 재구성은 단순한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자주성을 뒷받침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후 고조선 중심주의와 낙랑군 재해석, 고구려 우월론으로 이어지는 이념적 역사 서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고고학은 식민사관의 도구였지만, 해방 이후 북한은 이를 극복하고 ‘민족 중심의 고고학’을 출발시켰다. 그러나 이 고고학은 학문 자체의 순수성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편되었으며, 초기부터 이념과 연결된 특수한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 고고학의 이러한 특성은 이후 시대별 발전 과정에서도 지속되며, 남한과는 전혀 다른 궤도의 학문 체계를 만들어냈다

댓글 남기기

error: Content is protected !!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